만박님께서 소개해 주신대로 지난 토요일 5월 5일자 중앙일보에 "
KAIST `웹 2.0 특강` 지상중계 ③ 집단 지성의 활용"이란 제목의 기사가 나갔습니다.
중앙일보에 기고하게 된 경위는 지난 3월 7일(마침 천재지변이 발생한 바로 그 날이군요.^^)
한재선박사님의 강권으로 주제넘게 맡게 되었던
KAIST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의
"웹2.0 특강" 중 집단지성 세션 때문이었습니다. 아는 것도 없는 변방의 블로거인 저를 불러 주셔서, 덕분에 여러 훌륭하신 교수님들과 학생들과 재미있게 생각을 주고 받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그 특강이 연재물로 중앙일보에 실리는 바람에 제가 기사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전후로
서울대 인터넷 데이터베이스 연구실의 세미나, 2007년 제1회 정기 인하대학교 BK 정보기술 사업단 유비쿼터스 인텔리젼스 워크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세미나, KAIST 문화기술대학원의 특강 등에서 웹2.0과 집단지성에 관해 많은 분들과 이야기 나누었고, 2007 웹2.0 코리아 컨퍼런스에서도 짧은 시간 발표를 했었습니다만, 이쯤에서 종이신문에 익숙한 일반 독자도 '집단지성' 내지는 '대중의 지혜'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제가 보내 드렸던 글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그냥 하드에 썩히는 것이 아까워 소개해 봅니다.^^)
“집단지성의활용”이 웹2.0의 핵심
미국의 딜리셔스(del.icio.us)와 한국의 마가린(mar.gar.in)으로 대표되는 소셜북마킹은 가장 대표적인 웹2.0 서비스로꼽힌다. 소셜 북마킹이란 마치 책을 읽다 중요한 내용을 만나면 밑줄 긋고 메모하고 귀퉁이를 접어 표시해두듯, 웹을 서핑하다 발견한 기억해 둘만한 웹페이지에 꼬리표(태그)를 붙여 분류하고 보관해둘 수 있는 서비스이다. 이렇게 하면 단순히브라우저의 즐겨찾기에 저장해 두는 것과 달리 사용하는 PC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다시 찾아볼수 있으며, 원하는 대로 분류하고(예를 들어, ‘읽어볼것’, ‘덧글단것’ 등으로),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
매 순간 끊임없이 수많은 문서가 만들어지는 웹에서 검색만으로 한 번 보았던 웹문서를 다시 찾기는 힘들다는 사실을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용자들 사이에 소셜북마킹은 크게 각광받고 있다. 현재 미국에만 250개, 일본엔 50개가넘는 서비스가 성업 중이며, 그 “소셜”이란 특성상 언어문화권별로 동일한 관심사를 가지는 사용자군별로 독립된 소셜북마킹 서비스가 자리잡는 추세이다.
마가린(mar.gar.in)에선 어떤 웹페이지를 보관한 총사용자수가그 문서의 중요도를 판별해 준다. ‘웹2.0’을 포탈에서검색하면 포탈의 편집자가 편집해둔 대로 볼 수 밖에 없지만(편집자의 지성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마가린에서 ‘웹2.0’을검색하면 많은 사용자의 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뽑아둔 문서를 우선순위별로 알 수 있다. 또한 문서의중요도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실시간 역동적으로 반영된다.
이처럼 개인적 목적의 개별적 행위에서 마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지성을 추출하여 새로운 정보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을 ‘집단지성’, 더 구체적으론 ‘대중의 지혜’를활용하는 것(harnessing collective intelligence)이라고 하며, 이것을 웹2.0의 핵심이라 파악하는 것이 지난 3년간 계속돼온 웹2.0의 본질에 관한 논란의 최신 결과물이다.
“대중의 지혜(Wisdom ofCrowds)”는 잡지 ‘뉴요커’의 칼럼니스트인제임스 서로위키가 2004년 출간한 동명의 책에서 주창한 개념으로, 기존의‘협업’이나 ‘한몸처럼 움직이고 생각하는 전체’라는 개념의 ‘집단지성’과는 거리가 있다. 팀워크를 예로 들면, 개미나 꿀벌에서 볼 수 있듯 잘 조직된 분업화된 팀이 발휘하는 것이 ‘기존의집단지성’식 팀워크라면, 불협화음을 내는 다양한 목소리로독립된 개인처럼 움직이는 팀에서 특정 매커니즘을 통해 합의가 아닌 정답을 도출해 내는 것이 ‘대중의지혜식 집단지성’의 팀워크이다.
구글이 웹2.0 기업인 이유는 높은 수익성이나 다양한 서비스 때문이 아니라, 페이지랭크(PageRank)란 웹문서의 중요도를판별하는 구글의 알고리즘이 ‘대중의 지혜’를 반영한 것이기때문이다. 구글은 웹문서의 하이퍼링크를 링크가 걸린 페이지에 대한 투표로 해석하여, 많은 링크를 받았을수록 또는 권위있는 사이트에서 링크를 받았을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배정하는 식으로 우선순위를정하게 된다. 물론 페이지랭크는 독자가 아닌 웹문서를 작성한 사람들의 ‘집단지성’을 구현한 것이란 한계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기존의 검색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검색품질을 보여준다.
보다 넓은 의미로 ‘집단지성’을파악하는 측에선 ‘협업’의 범주에 속하는 위키피디어, 소셜 뉴스, 블로고스피어 등도 웹2.0으로파악한다. 이들은 ‘개인이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을 집단은가능케 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민제안에 따라 버스 손잡이 모양을 바꾼 서울시의 노력과 같은 크라우드 소싱(crowdsourcing)도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한예로 볼 수 있으며, 개방과 공유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참여를 이끌어 내어 ‘집단지성’을 활용하려는 노력은 다양한 분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것이 웹2.0이 가진 트랜드적인 요소이다. 결국 ‘대중의 지혜’를읽어내어 ‘집단지성’을 구현할 새로운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것, 그것이 새로운 웹2.0 서비스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너무 마가린의 홍보기사처럼^^ 되어 버렸다고 말씀을 주셔서(사례 위주로 재미있게 써달라고 하시구선..^^) 다시 개념 위주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지난 토요일의 기사입니다.
그런데, 기사를 싣기 위해 메일이 오가던 와중 기사를 어떤 이름, 즉 어떤 정체성을 사용해 발표할 것인가에 대해 이견이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제가 필명을 사용하고 오프라인의 아이덴티티를 밝히지 않는데는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습니다. 중간에서 조율하시던 한박사님께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작년
월간 w.e.b에서 (고맙게도) 두 번이나 기사를 실어 주셨을 때는 PRAK란 정체성을 사용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역시 중앙일보는 중앙일간지 이다보니 아무래도 아직은 전통을 고수하는 측면이 있나 봅니다. 여튼 우여곡절 끝에 프라크란 블로거로서의 정체성을 사용해서 기사가 나갔습니다. 제가 요청드렸던 것은 "블로거 프라크" 였는데, 정확히는 "프라크(필자 요구로 온라인 블로그(www.fortytwo.co.kr/tt) 필명 사용)"이라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가린에 대해서는 한 줄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참 재미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오늘날의 세상에서 블로거라는 정체성이 그 자체로 얼마나 실질적인 정체성으로 인식되고 있는가, 또한 얼마나 용인가능한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일찌기 피에르 레비는 1994년 발간한 '집단지성'에서 책의 절반에 해당하는 전반부를 '사회적 유대의 기술(engineering the social bond)'을 설명하는데 할애했습니다. 그것은 또 다시 유목시대로 돌아간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으로서의 우리가 어떻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인류학적 공간으로 파악하는) '지식의 공간'에서는 무엇이 정체성이 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겸손하고 열린태도로 서로 "상호 수련"을 해야 함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평원의 저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말타고 달려오는 사람이 과연 나보다 힘이 셀지,칼싸움을 더 잘할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유목민의 상황에선 겸손과 타자에 대한 존중이 가장 적절한 생존 전략일 겁니다. 이방인(stranger)에 대한 환대가 암묵적 규칙으로 자리잡은 유목민의 생활방식은 그런 상황적 특성에 연유합니다.
마찬가지로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이 어떤 경력과 학위와 지식을 가지고 계시는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남겨진 아이디와 덧글이 유일한 정보의 소스이며, 그 분의 블로그에 가서 글을 읽어보더라도 그 분에 관해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더불어,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의 어떤 지식이건 그것은 그 나름의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레비 교수는 이렇게 썼습니다.
"타인의 지식은 해답과 데이터의 합으로 귀결될 수 없다. 우리가 여기에서 부각시키고자 하는 지식은 삶의 지혜이기도 하며, 세계를 건설하고 그 안에 거주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것은 또한 삶의 긴 시간을 고려한다. 내가 정보를 수집하고 대화를 한다고 해도, 그리고 타인에게서 배운다고 해도, 그가 알고 있는 것을 결코 모두 알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그에 대한 지식의 구축이나 그가 보유하고 있는 전문적 능력 및 정보의 단순한 포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강한 의미에서의 수련이란 타자의 세계가 가진 불가해성 혹은 비 환원성과의 만남이며, 이는 그에 대한 존중의 바탕을 이룬다. 내 능력의 가능한 원천인 동시에 철저히 수수께끼로 남는 타자는 모든 면에서 동경의 대상이 된다."
"Knowledge of the other can't be reduced to a sum of results or data. Knowledge, in the sense we are using the word here, is also a knowledge-of-living; it is inseparable from the construction and habitation of a world, and incorporates the full span of our life. For this reason, even though I need to gather information and exchange ideas, even if I am able to learn from the other, I'll never know everything he knows. Our need to listen to the other can never lead to the construction of knowldege about him. We cannot simply capture his expertise or the information he possesses. Apprenticeship, in th fullest sense of the word, also implies that we confront the incomprehensibility, the irreducibility of the world of the other, which is the basis of my respect for him. Although a possible source of power for me, the other remains enigmatic, becomes a desirable being in every respect."
인터넷의 시대에 겸손과 존중과 열린태도는 (단순히 있으면 좋을 미덕이 아닌) 반드시 갖추어야할 상호 소통의 기본 태도입니다. 이 룰을 어기면 스스로를 차단시켜 끊임없이 주변을 맴돌 수 밖에 없게 됩니다.(새로운 아이덴티티/페르소나를 만든다면 또 다르겠죠?^^) 제대로 상호소통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소외되고 고립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분께서 말씀하시듯 주목은 가장 희소하며 귀중한 자원입니다. (이 밈을 우리 사회도 점점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초 대통령의 개헌발의가 정치권과 언론의 침묵으로 이슈화되지 않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실물 사회와 다른 점이라면 무인도에 고립되더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끊임없이 들여다 볼 수는 있다는 점이랄까요.
말이 좀 옆으로 샜군요.^^ 여튼, 정체성에 관해서는, '이름'과 '주소'로 대별되는 '지구'와 '영토'에서의 정체성에 더해, 산업혁명 이후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상품의 공간'에서 지금까지 인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은 '직업'입니다. (지구, 영토, 상품의 공간은 우리가 여태 살아 온 인류학적 공간입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상품 유통의 공간 위에서 하나의 정체성을 갖는 것, 그리고 존재하는 것은 생산과 경제적 교환에 참여하고, 제조 거래 통신 네트워크의 교차점들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상품의 공간에서 실업자가 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사회적 정체성은 '노동'에 의해, 즉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유급 일자리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력서에는 성명(지구 위의 위치)과 주소(영토 위의 위치) 다음에 대개 직업(상품 공간에서의 위치)이 나온다. '직업' 없이도 사회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가능할까?"
그리고 인터넷 (information super highway, 94년 책입니다.^^)이 우리에게 열어준 지식 공간과 그곳에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습니다.
"분명하게, 숨김없이 그리고 공개적으로 상호 수련을 인간 관계의 매개로 설정하자. 이때 정체성은 지식의 정체성이 된다."
"We can explicitly establish, openly and publicly, mutual apprenticeship as a way of mediating relationships among individuals. Our identities would then become knowledge identities."
또한,
"타자가 지식의 원천이라면 나 역시 그러하다. 나의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또 교육 기관이 내게 어떤 평가를 내렸든 간에,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는 수련의 기회를 제공한다. 지식은 삶과 공통의 외연을 갖는 만큼, 나는 삶의 경험, 직업 경력, 사회적 문화적 실천을 통해서 지식의 원천을 공동체에 제공한다. 설사 내가 실업자고 돈이 없고 학위가 없고 변두리에서 고생하고 있으며 문맹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무용지물이 아니다. 나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이다. 지식의 공간에서 나는 하나의 이미지, 지위, 존엄성, 개인적이고 긍정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 모든 인간은 지식의 정체성을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If the other is a source of knowledge, reciprocity is immediate. Regardless of my temporary social position, regardless of the judgment of an educational institution about my abilities, I can also become an opportunity for learning to someone else. Through my experience of life, my professional career, my social and cultural habits, I can - since knowledge is coextensive with life - provide knowledge resources to the community. Even though I am unemployed, or without money or a diploma, condemned to life in a ghetto, illiterate, I am not useless. I am not interchangeable. I have an image, a position, dignity, a personal and positive value within the knowledge space. All of us have the right to be acknowledged as a knowledge identity."
라고 썼습니다.
저는 레비교수의 주장에 공감하며, 그런 "지식의 정체성"의 하나가 블로거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불어, 그런 지식의 정체성으로 상호소통하는 것이 후광효과(halo effect)를 배제하여, 편견없이, 서로의 글만으로, 생각에 대한 것만으로 교류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앞으로도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여튼 중앙일간지에서 용기있는 결정을 내리셔서 블로거라는 정체성으로 기사가 나갈 수 있도록 애써주신 모든 분들과 특히 담당기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것이
작년의 상황에 비해 많은 진전을 이룬 의미있는 일이라 혼자서라도 나름 의미를 부여해 봅니다.^^ 감사합니다.